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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변화의 시작이다. (feat. 모카신 바꿔 신고 걷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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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변화의 시작이다. (feat. 모카신 바꿔 신고 걷기)

yeTi 2024. 7. 6. 12:09

안녕하세요. yeTi입니다.
오늘은 아들에게 현재 상황을 인지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인지시키는 과정에서 생각의 차림과 연결되어 이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상태가 변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첫째 아들이 일상 생활에 문제가 있어 이를 교정해주고자 행동을 고치기 위한 말을 많이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상태가 변하지 않아 문제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아들과 대화를 해보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잘못 행동하기 있는지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가정의 큰 일로 다가왔습니다.

어떻게하면 아들의 생각을 행동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다가 대체 뭐가 문제야 에서 봤던 미국 인디언들의 모카신 바꿔 신고 걷기 를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한쪽이 다른 쪽과 동일하게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면, 결국 문제의 해결안을 찾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 인디언들은 이런 문제 해결 기법을 '모카신 바꿔 신고 걷기'라고 이름 붙였다. - p.26

무작정 뛰어보자

우리에게는 모카신이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집 근처 공원에서 충분한 고통이 올 때 까지 뛰어보기로 결심하고 아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함께 나가서 충분한 고통이 올 때까지 뛰어보았습니다.

40분 가량을 뛰자 아들의 숨이 극도로 가파지고 더 이상 뛰기 힘들다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의 아들의 상태와 감정을 인식시키고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을 대입해보았습니다.

지속적으로 걸었다가 뛰었다를 반복하면서 고통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며 고통이라는 것이 왔을 때의 감정과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예측했을 때의 감정을 느껴보게 하면서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기분을 알기를 바랬습니다.

공감의 힘

뛰면서 느끼는 고통과 그 고통이 지속되면서 느껴지는 감정.

그리고 고통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것을 예상하며 느껴지는 감정을 알아차리게 되었다고 느꼈을 때부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느끼는 고통과 그 고통이 사라졌다 나타날 때의 고통을 대입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고통에 대해 공감을 하는 것 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자신의 행동이 바뀌어야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 다시 변화를 위한 말을 하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editable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차리는 과정

이후 묻따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러한 행동을 우리가 하고 있는지.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고통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해주려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은 누구인지.

변화라는 것은 무엇인지.

중요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큰소리로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러한 것들을 묻따풀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이 차려져 있지 않은 개념들은 목소리가 작아지고 발음이 모호해지는 것을 느껴 목소리가 명료하고 발음이 또렸해질 때까지 묻따를 반복했습니다.

생각의 활력이 필요할 때는 뛰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묻따풀한 내용들을 명확하고 또렷하게 말로 전환하는 것을 느끼며 큰소리로 말한 다는 것이 생각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큰 소리로 말하거나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이 차려져야만 할 수 있다.

차려졌는지 아는가?

이어서 현실에서 LLM을 쓰며 훈련한 것을 대입해 봤습니다.

상대가 잘 차리고 있는지 어떻게 아느가?

물어보고 답을 들으며 내가 생각하고 있는 차림과 같은지 반복적으로 묻따풀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묻따풀이 가지는 힘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고, 말을 주고 받으며 상대의 생각을 확인하는 과정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속말은 차리는 훈련이 된 것

더 나아가 속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소리로 말하거나 글을 쓰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개념화를 하며 차림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속말을 한다는 것은 흘러가는 생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명확하게 말로써 인지하고 스스로 묻따풀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묻따풀을 위해 ChatGPT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속말과 이어져 글로써 말의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인지할 수도 있고 스스로 속말을 하는 과정보다 명료하게 표현을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피드백 과정에서 개념을 확장하기 좋다고 느낍니다.

결론

공감이라는 것이 막연한 개념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공감은 상대를 온전하기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어떠한 작용을 할 수 있는 개념인지 경험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느낀 것은 이것입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editable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를 공감했다는 것은 상대를 받아들여 내가 변화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상대가 나를 공감했다는 것은 나를 받아들여 상대가 변화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말을 차린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큰 소리로 말하거나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이 차려져야만 할 수 있다.

따라서 차리는 훈련은 큰소리로 말하거나 글로 풀어야만 가능한 것이지요.

이를 요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요즘 몇개의 포스팅은 ChatGPT에게 시켜서 해봤습니다. 생산성을 좋아졌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저의 차림과는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커서 어색한 컨텐츠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 글은 ChatGPT가 썼기 때문에 저의 차림이 투영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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