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스타트업은 왜 제품보다 믿음을 먼저 만들어야 할까 본문
안녕하세요. yeTi입니다.
오늘은 오래전부터 스타트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생각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인용문을 좋아합니다.
단어를 통해 가상의 실제를 창조하는 능력은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 p.60,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가 대규모 사회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고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독서 모임을 통해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나름의 의미로 정의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스타트업은 믿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 동안의 생각을 풀어낸 가장 간단한 말입니다.
스타트업은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조직이 아닙니다.
스타트업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는 조직입니다.
사람들의 믿음을 만들어낸 스타트업은 그들만의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변화의 본질은 인간 믿음의 변화다
시장 변화는 기술 변화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앱이 나오고 새로운 물류 시스템이 생기고 새로운 결제 방식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정말 시장이 되려면 사람들의 믿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쿠팡이 등장하기 전과 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쿠팡 이전에도 온라인 쇼핑은 있었습니다.
배송도 있었습니다.
물건을 주문하면 집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쿠팡이 바꾼 것은 단순히 배송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쿠팡은 한국인의 배송에 대한 믿음을 바꾸었습니다.
고객들이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걸 뜻한다. 이처럼 익일배송 보장은 경쟁에 있어서 이제 출발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 p.119, 물류트랜드 2024
이 믿음이 생기는 순간, 익일배송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경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시장 변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은 물건이 바뀌어서만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기준이 바뀔 때 시장이 변합니다.
예전에는 며칠 기다리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제는 내일 받지 못하면 느리다고 느낍니다.
믿음이 바뀐 것입니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기준을 만든다
스타트업이 만드는 것은 기능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기준입니다.
“배송은 빨라야 한다.”
“신선한 해산물은 집에서도 먹을 수 있다.”
“중간 유통을 줄이면 더 합리적인 가격이 가능하다.”
“개인이 가진 데이터도 자산이 될 수 있다.”
“외국어 학습은 문제집이 아니라 대화에서 시작될 수 있다.”
“감정 회복은 거창한 치료가 아니라 작은 실천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런 문장들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드는 믿음의 씨앗입니다.
예를 들어 파도상자 같은 서비스를 바라볼 때도 저는 기능보다 믿음을 먼저 보게 됩니다.
파도상자가 만들어가는 믿음은 단순히 “해산물을 배송한다”가 아닙니다.
그 믿음은 오히려 이런 것에 가깝습니다.
“여행지에서나 먹을 수 있던 신선함을 집에서도 누릴 수 있다.”
“오프라인 시장에서 눈탱이를 맞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선함과 가격 자체가 아닙니다.
고객이 그 서비스를 통해 무엇을 믿게 되는가 입니다.
스타트업은 결국 고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조직입니다.
“당신이 당연하게 여기던 기준은 바뀔 수 있습니다.”
믿음은 경제권이 된다
사토 가쓰아키의 《머니 2.0》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지점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경제와 정치, 경제와 종교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경제와 정치의 경계도 사라진다고 이야기했는데, 마찬가지로 경제와 종교의 경계도 사라질 것이다. - p.258, Money 2.0
처음에는 다소 과장된 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종교도, 경제도, 국가는 모두 공동의 믿음 위에 서 있습니다.
돈은 종이 자체에 가치가 있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종이를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작동합니다.
토큰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서비스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 안에서 토큰이 발행되고, 참여자들이 그 토큰의 가치를 믿기 시작하면 하나의 작은 경제권이 생깁니다.
이 관점은 스타트업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거대한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작은 공동체를 만듭니다.
같은 문제를 느끼고, 같은 가능성을 믿고, 같은 미래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을 모읍니다.
이것이 커뮤니티를 먼저 만들고, 팬덤을 만들고, 그 뒤에 서비스를 확장하라는 말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는 마케팅 채널이 아닙니다.
커뮤니티는 믿음이 자라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충분히 강해지면, 그 믿음은 경제권이 됩니다.
창업자는 누군가가 되려고 하면 끝이다
《머니 2.0》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습니다.
창업자는 누군가가 되려고 하면 끝 - p.239, Money 2.0
이 문장은 스타트업의 행동양식과도 이어집니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창업자가 누군가를 흉내 내기 시작하면, 그 순간 스타트업은 자기만의 믿음을 잃습니다.
물론 다른 회사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인재를 영입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검증된 운영 방식이나 성장 전략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들이 창업자의 고유한 믿음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위험해집니다.
스타트업은 정답을 복제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가설을 현실에서 증명하는 조직입니다.
다른 회사가 성공한 방식이 우리에게도 맞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모방입니다.
스타트업은 남이 만든 믿음을 따라가는 순간 생동감을 잃습니다.
자기만의 믿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문화와 편한 문화는 다르다
이 믿음은 제품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조직 문화에도 적용됩니다.
이전에 봤던 글 중 좋은 문화와 편한 문화를 구분하는 인상 깊은 말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직장인의 입장에서 좋은 문화는 편한 문화로 이해됩니다.
자율적이고, 부담이 적고, 갈등이 적고,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문화.
물론 이것들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관점에서 문화는 조금 다르게 보아야 합니다.
스타트업의 문화는 단순히 구성원을 편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닙니다.
스타트업의 문화는 공동의 믿음을 유지하고, 그 믿음이 성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좋은 문화는 반드시 편한 문화와 같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좋은 문화란 이런 것입니다.
- 우리가 왜 이 문제를 푸는지 잊지 않게 하는 문화
- 불편한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문화
- 고객의 반응 앞에서 믿음을 수정할 수 있는 문화
- 성장을 위해 필요한 긴장을 견디게 하는 문화
- 서로의 편안함보다 공동의 방향을 우선할 수 있는 문화
편한 문화는 현재의 감정을 보호합니다.
좋은 문화는 공동의 믿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스타트업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믿음을 붙잡고 가는 조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믿음의 운영체제에 가깝습니다.
스타트업은 공동 환상을 교체하는 일이다
사토 가쓰아키는 “세계를 바꾸는 일”을 오래된 공동 환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환상을 덮어씌우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문장이 스타트업의 본질을 잘 설명한다고 느꼈습니다.
사회에는 이미 굳어진 공동 환상이 있습니다.
“배송은 며칠 걸리는 것이 당연하다.”
“신선식품은 직접 보고 사야 한다.”
“회사는 사무실에 출근해야 일하는 곳이다.”
“은행이 아니면 금융을 할 수 없다.”
“교육은 강의실에서 이루어진다.”
“AI는 사람이 시키는 일을 보조하는 도구다.”
스타트업은 이런 당연함에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그래야 할까?”
“다른 방식은 불가능할까?”
“사람들이 새롭게 믿을 수 있는 기준은 없을까?”
그리고 새로운 믿음을 제안합니다.
이 믿음이 충분히 강해지면, 사람들은 기존의 기준을 낡은 것으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시장이 바뀝니다.
독점은 새로운 믿음에서 시작된다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이다.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독점 이윤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은 혁신을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독점기업은 혁신을 계속 지속할 수 있게 되는데, 왜냐하면 독점 이윤 덕분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경쟁 기업들은 꿈도 꾸지 못할 야심 찬 연구 프로젝트에도 돈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 제로 투 원 by 피터 틸
처음 이 문장은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독점을 부정적인 말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피터 틸이 말하는 독점은 단순히 경쟁자를 억누르는 독점이 아닙니다.
남들이 보지 못한 시장을 만들고, 그 시장 안에서 압도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블루오션을 만든다는 말도 결국 비슷합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고객군을 찾는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믿음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전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것.
전에는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당연한 일로 바꾸는 것.
이것이 스타트업이 만드는 독점의 출발점입니다.
독점은 시장 점유율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독점은 믿음의 점유율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무엇인가
이제 저는 스타트업을 이렇게 정의해보고 싶습니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믿음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새로운”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단어는 “함께”입니다.
믿음은 혼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철학자도 혼자 믿음을 만들 수 있고, 작가도 혼자 세계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혼자 믿는 일이 아닙니다.
창업자는 먼저 믿습니다.
팀원은 그 믿음에 합류합니다.
투자자는 그 믿음이 커질 가능성에 자원을 겁니다.
초기 사용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제품 안에서 가능성을 봅니다.
고객은 그 믿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렇게 믿음은 혼자만의 생각에서 벗어나 관계가 됩니다.
그리고 관계가 쌓이면 하나의 시장이 됩니다.
스타트업의 일은 기능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기능은 믿음을 구체화하는 수단입니다.
마케팅은 믿음을 언어로 번역하는 일입니다.
세일즈는 믿음을 고객의 문제와 연결하는 일입니다.
제품 개발은 믿음을 실제 경험으로 증명하는 일입니다.
조직 문화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는 일입니다.
PMF는 그 믿음이 창업자만의 것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도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새로운 넥서스를 만드는 시도입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다음 몇 사람이 그 믿음을 함께 붙잡습니다.
그다음 소수의 사용자가 그 가능성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스타트업은 단순한 제품을 넘어섭니다.
하나의 새로운 의미 체계가 됩니다.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믿음의 네트워크가 됩니다.
저는 이것이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믿음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시장을 만든다는 것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믿는 기준을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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